“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 사도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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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 목사(호남15기 복음선교관학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

‘마음에 큰 근심, 마음에 있는 그치지 않는고통…’
나에게도 마음에 큰 근심이 있고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데 그 이유와 내용을 생각해보니 사도바울과 너무나 다른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알려면 그가 무엇을 구하는지를 보면 안다고 했는데, 나는 여전히 ‘나’를 구하고 있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 존재가 새 생명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근심과 고통이 일어난 것이다.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기 동족의 구원을 바란다는 그 고백은 나에게 있어서 동의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거짓말로도 흉내 낼 수 없는 말, 아니 흉내 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지는데 다른 사람의 구원이 무슨 말인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묵상 중에 깨닫게 하셨다. 내가 받을 저주를 친히 다 받으시고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하나뿐인 아들이 나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끊어져야하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모세도 그러했고 청교도인들도 그러했단다. 이렇게 예수생명으로 변화된 사람들은 나 중심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북한 사역자를 훈련하는 선교사님도 혹한의 추위에 얇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온 사람을 위해 겉옷을 내주고 독감과 폐렴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한 영혼을 구원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병드는 것도 괜찮다고 하셨단다. 존재가 바뀐 사람들의 고백과 그 삶은 동일했다. 예수님을 본받느니 어쩌느니, 헌신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모든 문제가 존재의 변화에서 다 결정이 난다는 것을 보았다.

이날 복음선교관학교 마지막 순서로 보았던 영상에서 한 청년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대해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어차피 불에 태워 드려질 거면 통째로 드려도 되지 않나요?”
그런데 주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통째로는 안된다고 하시며 목을 따고 피를 흘리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기름을 베어 내고 내장과 정강이를 분리하여 씻어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이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가?

그 청년이 마치 나 같았다. 나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이런 과정 없이 통째로 나를 주님께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죽었다고 고백한다면 이 모든 과정은 그냥 되었다 치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반드시 이 죽음이 실제 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래야 하나님께 향기로운 번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나를 하나님께 통째로 드리는 척 하면서 삶에서의 치열한 싸움은 비켜가고 싶었다. 그러나 주님은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바꾸셨고, 나란 존재 안에만 가두어 둘 수 없는 영광스런 복음을 나에게 허락하셨다. 존재를 바꾸시는 이 영광스런 복음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향해 큰 근심과 고통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간다.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마음으로살게 하실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사도바울의 근심과 모세의 고통이 내 안에서 동일하게 일어나 복음을 전하는 순종의 자리에 나아가기까지 주님은 쉬지 않고 내 안에서 일하실 것이다.

글쓴이 최영신 목사는│전주 주소망교회를 섬기고 있다. 2017년 복음 앞에 은혜를 받고 이후 중보기도학교와 복음선교관학교를 통해 중보적, 선교적 삶을 구체적으로 주님께 드리고 있다. 매달 교회 안에서 ‘느헤미야52기도’의 시간을 통해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순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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