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회개 _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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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회개는 죄책감에 대한 고백이라기보다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 동시에 벌과 심판대 앞에 서는 일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짓는 죄를 고백하는 것이 마땅할 뿐 아니라 중대한 죄에 대해서는 오래 전에 잊어버린 것이라도 회상해서 고백해야 한다. 다윗은 최근에 지은 죄를 부끄러워하면서 모태에 있었던 때까지 돌아가서 자기를 검토한다. 그리고 그때에도 자기는 육의 더러움에 감염되어 있었고 부패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시 51:3~5) 사도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고 선포하였다.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권고함으로써 그들이 스스로 죄인인 것과 그들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충고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함으로써 그들이 육을 죽이며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충심으로 원하게 되기를 바란 것이다.

나는 자기를 심히 싫어할 줄 아는 사람은 많은 유익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싫어하되 진창에 박혀서 전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속히 나아가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생(生)과 사(死)에 접붙임을 받아 계속적인 회개에 유의하게 되기 위해서다. 참으로 죄를 진심으로 미워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라

죄를 용서하며 잊어버리며 씻어버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주께 죄를 고백해야 하며 화해를 구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속을 아시며 모든 생각을 아시는 주님께 우리의 속마음을 쏟아 놓자.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요일 1:9)라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고백할 것인가?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괴로운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그의 앞에 엎드려 고백해야 한다. 진심으로 우리 자신을 비난하며 정죄하면서, 그의 선하심과 자비로 무죄 선고를 얻어야 한다.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 3:19)

죄를 서로 고백하라

“아무도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먼저
고백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비를
고백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은 고백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선포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언제든지 동일한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비밀을 한 사람에게 한 번만 귀엣말로 속삭이는 것이 아니라, 자주 공개적으로 온 세상이 듣는 데서 자기의 수치와 하나님의 큰 자비와 영예를 성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이제 나는 변명하지 않겠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죄인이라고 판정 받는 것을 피하려 하지 않으며, 내가 하나님에게 감추려고 하던 일이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비밀히 고백한 후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겸손을 위해서 필요한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기꺼이 고백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가증스러움을 고백함으로써 우리 사이에서와 온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밝히 보이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야고보는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서로 기도하라”(약 5:16)고 하였다. 그는 상호 고백과 상호 기도를 결합하였다. 우리가 사제들에게만 고백해야 된다면 그들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야고보가 사용한 ‘알렐로이스’(ἀλλήλοις)란 말은 ‘서로, 순서로, 번갈아’, 혹은 그들이 원한다면 ‘상호간에’ 라는 뜻이다. 이러한 특권을 사제들에게만 돌리기 때문에 우리는 고백하는 일도 사제들에게만 위탁했었다.

그러나 이런 하찮은 말들을 일체 버리라. 즉, 우리의 약점을 서로 고백하여, 서로 충고를 받으며, 서로 위로하고, 서로의 그러한 약점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아무도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먼저 고백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비를 고백할 수 없다.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교회, 즉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저주를 선언한다. 주께서는 “모든 것을 죄 아래”(갈 3:22) 가두었기 때문이다. 주의 뜻은 “모든 입을 막 고”(롬 3:19),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롬 3:20, 고전 1:29)

온 회중이 죄를 고백함

이런 종류의 고백은 교회에서 평상시에도 실천해야 하며 사람들이 어떤 공통된 죄를 지었을 때에는 특별히 실천해야 한다. 모든 백성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행한 것은 이 특별한 고백의 예였다.(느 1:7, 9:1~2) 이러한 고백은 주께서 친히 권장하셨다는 사실뿐 아니라, 고백의 유용성을 생각한다면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감히 이러한 제안을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거룩한 집회 로 모일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서 있는 것이므로 우선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을 고백하는 것이 가장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혹자는 “그것은 모든 기도에서 하는 일이며 우리는 늘 죄를 고백한다.”고 말 할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기만족과 우둔함과 태만이 얼마나 크고 심각한가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 들이 어떤 공적 고백의 행사를 통해서 자기를 낮추는 관습을 가질 때 그것이 유익한 규례가 될 것이라는 나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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