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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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겸 형제(헤브론원형학교 12학년)

지난 한 달여의 방학 시간을 보내면서 받은 은혜들과 앞으로의 결단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제가 배운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을 묵상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들러리였습니다. 영화에서라면 그가 맡은 역할은 단역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서 보면 사도 바울은 무언가 된 것처럼 여기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나는세례 요한 보다 예수님의 역할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초라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역사에서 이름을 남기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름을 새기고 싶은 꿈이 나의 기쁨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제가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런 권면이나 책망을 들을 때면 나름의 변명으로 저를 방어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교만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자아를 사랑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내 오감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나 자신을 기만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묵상과 일기, 학교의 학업은 그렇게 유익되지 않는 것이라는 변명으로 게으름을 정당화하고 성실과는 멀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편하게 해주는 나름의 논리에 갇혀 진리의 빛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눈에 나의 모습은 깔끔하고 똑똑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어야 했지만 나는 너무나 게을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추한 모습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또 다른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내 자신이 추하고 천박하여 소망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판단이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죄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 죄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서는 그렇게 안 보이던 소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소망은 바로 예수님이 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자유를 느꼈습니다. 그동안 나는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나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감정에 종노릇하던 자였습니다. 감정에 사탕을 물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을 이제 믿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감정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교만과 게으름의 지배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자아의 욕구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자로 빚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힘들더라도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변명하는 법 대신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전부이시기 때문에 이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인생 제일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완전하고 영원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적인 자기 포기가 왜 하나님의 절대 은총을 가져오는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 스탠리 존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영성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제야 나는 나 자신에서 벗어나 나의 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나의 결단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저의 미래의 주도권을 완전히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싸움 중에 있습니다. 나의 사고습관은 아직도 헛된 공상과 허영심과 같은 사탕발린 생각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진리보다는 편하게 하는 환상에 빠지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영적 게으름을 대적하고 온전히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도록 나아갈 것을 결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를 통치하시도록 기도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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