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푯대! 부활의 소망(고전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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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푯대! 부활의 소망(고전15장)”

김정화 선교사(전능자의그늘미니스트리)

바울이 전한 복음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전 15:2)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전한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전한다. 만약 우리가 복음을 헛되이 믿고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위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알고 있는 그 복음을 다시 점검하라고 말한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이다. 그런데 이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말씀하신 내용이 아니다. 이미 예전부터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누누이 말씀하신 것이었으므로 이 일이 실제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믿을 수 있었다(눅 24:25~27, 눅 24:44~48, 요 1:45, 행 26:22~23, 신 18:15, 행 2:25~32, 시22편, 사53장).

그리고 성령을 통해 단지 그리스도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곧 나의 죽음과 부활이 되었음을 믿게 하셨다.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육신 가운데 살지만 내 안에 죽어 있던 영혼이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새 영과 새 마음으로 살아난 것이다. 즉, 육체 가운데 살지만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삶 말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아는 것은 복음의 절반만 아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부활하실 때 영으로만 부활하시지 않고, 새로운 육체를 입고 부활하셨다. 놀랍게도 이 육체는 이전의 예수님의 몸과 달랐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을 때 알아보지 못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육체가 끝날 때 새로운 영에 걸맞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여기까지 믿어야 온전히 믿는 것이고 믿음의 방향이 다른 데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던 성경 속의 사람들이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와있다. 마치 죽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주의 복음을 위해서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성경 속의 증인들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면, 우리도 더 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그 당시에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런 일을 본 적이 없고,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만약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살리지 않으셨을 것이며,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난 일이 없다면 우리가 전한 복음은 헛것이고 믿음도 헛될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살 수밖에 없고, 죄 사함 받을 길이 없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잠자는 자들,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따른 자들도 헛될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부활이 없다면 제일 불쌍한 사람은 우리라고 말한다. 무엇하러 세상을 다 버리겠는가? 왜 헐벗고, 매 맞고, 욕먹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어리석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살겠는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그런데 부활은 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고, 증인들이 봤으며, 바울도 보았다고 증언한다. 어떤 나무에 첫 열매가 맺혔다면 계속 열매가 맺히게 될 것을 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주 안에서 죽은 자들과 지금 부활의 소망을 따라 기다리고 있는 자들도 부활하게 될 것을 알 수 있다. 이 일은 차례대로 될 것인데 첫째는 예수님이고, 그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를 믿고 잠자던 자들이 될 것이며 이들은 옛 몸이 아닌 새로운 몸으로 일어날 것이다. 만약 예수님 강림하실 때까지 살아있다면 죽음을 보지 않고 홀연히 변화돼 공중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마지막에는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다(계 20:12~14). 바다와 사망, 그리고 음부마저도 죽은 자들을 다 내주고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심판을 받고 영생을 얻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둘째 사망, 지옥 가운데로 떨어질 것이다. 이후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통치와 능력으로 원수를 밟고 사망을 불 못에 던지고 나면 끝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 주셨던 모든 권세와 통치와 능력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이 만유 가운데 유일한 하나님으로 높임을 받으시는 날이 이를 것이다.

분명한 믿음의 푯대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복음을 믿고 여러 죽을 위협 앞에 서 있었던 바울은 날마다 죽음을 직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 분명한 사실은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랑이 있다고 말한다. 솔직히 고린도전서를 읽어보면 이 교회에 자랑할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늘 연약하고 실패하고 쓰러지고 낙담하며, 죄짓고 배신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랑 때문에 날마다 죽기를 선택했다. 실제로 바울은 복음을 위해 수 없이 매를 맞았고, 여러 번 죽을 뻔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 안에 있는 교회를 향한 자랑과 세상 사람들에게 없는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능히 이겨냈다.

또 바울은 부활이 없다고 말하고, 현재 보이는 삶이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 하는 말에는 속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진정한 푯대인 몸의 부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는 날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그날을 바라보는 자만이 날마다 죽는 삶이 실제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푯대가 분명해야 한다.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2~3)

마지막 날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면 어떤 몸으로 나타나게 될까? 밭에 뿌려진 씨의 모양은 다 비슷해 보여도 나오는 싹은 씨마다 다른 것처럼, 씨 속에 있는 생명, 즉 그 안에 있는 DNA를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부활도 이와 같다. 하나님이 허락하실 거룩한 몸은 어떤 형상으로 나타날지 지금은 다 알 수는 없지만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을, 욕된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을,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을 거둘 것이다. 이전에 아담의 형상을 본받았던 것처럼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자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분이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신 것처럼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부활할 것이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 자신을 깨끗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망을 이기는 영광스러운 복음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5~57)

우리를 죽음으로 몰았던 죄, 그리고 우리를 정죄했던 율법도 이제는 끝이 나고, 생명으로 죽음을 삼키는 영원한 승리의 날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바울에게 주신 복음이고,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이다. 이 복음 때문에 믿음의 선진들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진리를 아는 자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초청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가졌다.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우리 전부를 드릴 수만 있다면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자랑하실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를 자랑하시는데 말이다. 이제 주님께 우리 삶의 전부를 드리자. 그렇게 전적으로 드리다가 죽으면 우리의 수고가 헛될까? 결코 그럴수 없다. 죽음조차도 우리에게 유익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보는 영원한 부활이 있고, 주님이 예비해 놓은 영원한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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