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아시아지부 2016 하반기 순방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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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그날이오기까지)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하반기 순방을 앞두고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모든 조건과 상황에 상관없는 주님의 분명한 뜻을 구해야 하는 절박한 마음에 이르게 하시고 말씀을 구하던 나에게 주님은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는 마지막 날 이사야 46장 10~11절 앞에 서게 하셨다.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동쪽에서 짐승을, 먼나라에서 사람을 부르신다는 말씀을 확증하여 받게 하셨다. 약속의 말씀을 취하고 보니 선교완성을 향한 어마어마한 말씀이었다.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한번 갖기도 쉽지 않는 복음캠프 일정을 현장에서 무려 세 번이나 갖게 되었고,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땅을 돌파해야 하는 일정들이 펼쳐졌다. 바로 인도, B국, 네팔 3개국 일정이었다.
혼자 준비하기에 버겁게 밀려드는 일들은 목구멍까지 차올라 체력의 한계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이루겠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씩 이뤄가셨다.

먼저 전주 청소년복음캠프를 섬기는 스텝들과 함께 인도 동부에 위치한 꼴카타를 섬길 기회가 열렸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꼴카타에서 MK(선교사 자녀) 복음캠프와 현지인 복음수련회를 3일씩 2번 갖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정말 이 때까지도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시작된 걸음이었다. 처음 봉착한 문제는 재정이었다. 한국 섬김이들도 현장 선교사님도 필요한 재정을 함께 간절히 구하게 하시며 넉넉히 채우시는 주님을 보게 하셨다.

다음 문제는 사람이었다. 한인 MK 인원은 수용이 가능한데 인도 현지인 인원이 70명까지 추가 되어 다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현지인을 섬기기 위해서는 언어가 가능한 면접관부터 조장 등 현장 섬김이가 너무 많이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복음학교가 열리는 네팔 일정에서도 한국 섬김이들이 절실했다. 그리고 B국은 우리를 맞아줄 현장 선교사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약속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사람이 필요하구나. 이 기쁜 소식,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뜻을 이룰 사람을 주님이 친히 불러주셔야 하는구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인도 현장과 국내에 있는 주님의 사람들을 요청했다. 매주 진행되는 서남아시아 기도모임에서는 문을 열어줄 사람을 불러주시길 기도했다. 이후 곳곳에서 놀라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인도 꼴카타 현장에서는 그동안 몰랐던 복음학교를 한 현장선교사들이 섬김이로 지원하였다. 네팔 미디어 복음학교에 복음사관학교를 수료한 다섯 명의 섬김이들을 넘치게 불러주셨다. B국은 두 분 선교사님 가정이 한꺼번에 연결되었다. 약속하신 말씀대로 주님이 한분 한분을 불러주셨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드디어 기쁘게 현장으로 출정했다.

인도 꼴카타에 도착했다. 드디어 꼴카타 청소년복음캠프가 시작되었다. 한인교회 청소년 대부분이 참여한 복음캠프. ‘혹시나 부모의 강요 때문은 아닐까?’하고 염려했지만, 아이들 안에는 하나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목마름이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복음 앞에 치열히 서며 자신들의 존재적 죄인 된 실체를 드러내고 십자가에서 주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하셨다.
청소년복음캠프를 섬기는 일로 나온 현장 선교사들 안에도 복음 앞에 동일한 목마름으로 서게 하시고, 자신들이 먼저 십자가 앞에 서는 기회가 되게 하셨다.

복음캠프가 끝난 다음 날 한인교회 주일예배를 드리고 바로 현지인 복음수련회로 이어졌다. 바로 그날 주일예배 메시지에서 ‘난공불락이라고 불리는 인도’라는 말이 내 안에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난공불락이라… 3억 3천의 신, 이슬람도 무너뜨릴 수 없었고 천여 년 동안 수많은 선교사들의 헌신에도 가장 많은 미전도종족이 있는 땅이 인도라고.. 그런 이 땅을 보이시는 주님의 마음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럴 수 없죠. 주님”
너무도 강하게 말씀하셨던 주님의 약속을 더욱 붙잡게 되었다. 그리고 선포했다. 반드시 이루실 주님이 어떻게 십자가로 이미 그 승리를 성취하셨는지. “그 어떤 것도 복음 앞에 결코 난공불락이란 있을 수 없다! 복음이면 충분한 능력이다!!”

다음날 아침부터 길게 줄을 지어 선 인도 현지인 훈련생들을 보며 흥분되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치열한 영적전쟁이 첫날부터 시작되었다. 먼 섬에서 오거나 밤새 기차를 타고 온 훈련생 등이 구토와 오한, 심지어 실신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통역자가 가장 쉬운 언어조차 생각나지 않고 막히기 시작했다. 꽉 찬 강의실은 환기가 되지 않아 조는 훈련생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결국 선포되어지는 복음은 결코 상황이나 대상의 어떠함에 막힐 수 없었다. 현지인 사역자들이 복음 앞에 정직히 자신을 깨트리며 옛사람의 죽음을 선포하고 십자가로 나아가게 하시는 승리를 주셨다. 뿐만 아니라 현지인 사역자들 전원이 선교사로 헌신하는 일이 일어났다.
목마름! 이들의 영혼이 목마름으로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 복음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이 복음으로 그들을 만나주셨다. 감격 그 자체였다.

복음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정을 마무리하고 급히 B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하자마자 심상치 않는 일이 그 땅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스떼마’, 즉 이슬람 부흥회였다. 각 나라에서 이 이슬람 부흥회를 참여하기 위해 비행기로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3백만 무슬림들이 모이는 부흥회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가는 엄청난 일정 속에서 두 분 선교사님들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차를 타고 달리는 도로 양편으로 수많은 인파가 줄지어 부흥회 현장을 가기위해 걷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는 기도 후 인파를 뚫고 높은 육교에 올랐다. 아찔했다. 수많은 영혼들이 내 눈앞에 들어왔다. ‘이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지? 나로서는 불가능 하구나. 그러니까 기도밖에 없구나! 그렇다면 난 얼마나 기도에 실제로 드려졌나?’ 저절로 회개와 결단이 일어났다.

주님은 이 현장 한복판까지 인도하셔서 직접 보이시며 선교완성을 향한 당신의 뜻과 열망을 말씀하셨다. 난공불락 인도가 복음이면 충분한 능력임을 보이셨다면 이슬람으로 묶인 이 땅에선 기도면 충분한 능력임을 각인하시듯. 그리고 조금씩 무너진 이 땅의 기도 성벽의 실체를 드러내셨다. 사실 이 땅은 어떤 선교현장에서도 보기 드문 52일간의 느헤미야기도 성벽을 4차례나 돌파한 곳이었다. 그 때 현장 선교사님들안에는 기도의 연합의 기쁨과 교제로 충만했었다. 그러나 현재 기도의 연합은 여러 상황과 환경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날 기도모임에 여러 기도의 용사들을 불러주셨다. “기도하고 싶었어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함께 연합해서…”
목마름! 기도의 목마름, 연합의 목마름으로 주님은 이들 안에 일하고 계셨다. 놀라웠다. 계획하지 않았던 학개서 말씀으로 기도하며 바로 이 땅의 상황을 보게 되었다. 무너진 이곳의 소수의 모임. 그러나 주님은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물으시고, 이 작은 기도의 시작이 모든 나라를 진동시키며 이전 영광보다 큰 선교완성을 향한 기도의 영광임을 보여주셨다. 선교완성! 기도가 능력임을 보는 그 영광과 감동의 시간이었다.
마침내 연합하여 기도의 자리를 이어갈 것을 결단케 하시는 일은 기도면 얼마나 충분한 능력인지를 보는 한편의 드라마, 아니 실제 주님의 일하심을 보는 말씀 성취의 현장이었다.

다음날 곧바로 마지막 나라 네팔로 출발했다. 처음으로 서남아 미디어 복음학교가 열리는 나라 네팔, 가난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복음화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땅이다. 한국 섬김이 도착 전 주님은 ‘연합’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그 ‘연합’에 대해 생각하게 하셨다.
강의 영상으로 진행되는 미디어 복음학교가 시작이 되고 셋째 날, 중요한 강의 영상이 갑자기 끊어지면서 학교 진행을 위한 치열한 믿음의 싸움이 일어났다. 그러나 살아계신 주님의 통치가 미디어 가운데도 역사하시는 영광을 보게 되었다.
전기가 무려 18시간이나 공급되지 않는 일이 많은 가난한 이 땅에 정말 이례적으로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오직 미디어 복음학교를 위해 허락하시듯 복음 앞에 마음껏 서게 하셨다.
여전히 선교사님들의 발목을 잡고 달릴 수 없게 했던 병든 자아를 죽음으로 넘기고 복음의 증인으로 다시금 한분 한분을 세우셨다. 이어 진행된 복음의 영광 느헤미야 기도는 그야말로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시는 시간이었다. ‘연합’은 복음과 기도가 하나 됨을 이루는 연합이었다!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르시는 일에 주님은 조금도 아끼지 않으시고 섬김이들의 대가지불과 가난한 정부까지 움직이게 하신 안정적인 전기 공급, 미디어까지 통치하시며 오직 이들을 선교완성을 위해 복음과 기도로 조건 없이 연합된 자들로 세우셨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음을 알게 하셨다.

한국으로 출국하는 주일 예배 때, 주님의 뜻을 이룰 사람은 다름 아닌 ‘나’라고 불러주셨다. ‘저요? 저 같은 사람이요? 얼마나 별 볼일 없고 소망 없는 사람인데…’ 이 어마어마한 선교완성이라는 주님의 기쁘신 뜻 앞에 별 볼일 없는 나 같은 존재를 부르신다. 오직 복음이면 기도면 선교완성을 이루고도 남을 능력임을 전부로 믿는 주님의 사람을 부르시고 그들의 연합을 통해 그 영광을 보게 하심을 마지막 결론과 같이 찍어 주셨다. 지금도 우리 모두를 부르신다. 선교완성의 기쁘신 뜻을 이룰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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