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흥사 디 엘 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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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그날이오기까지)

(D. L. Moody, 1837~1899)

디 엘 무디(D. L. Moody)는, 183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州)의 노스필드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무디가 4살 되던 해에 아내와 7남매, 그리고 빚을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다.
자연히 무디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생계를 돕기 위해 농사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17세 때,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와 매사추세츠의 클린톤에서 신문 배달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실수로 해고당한다. 그 후, 무디는 보스턴에 있는 삼촌의 구두 가게에서 4가지 조건 아래 구두 수선 일을 하였다.
그 조건들 중에 교회의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무디의 꿈은 빨리 돈을 벌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었기에, 신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디와 킴볼 선생

1855년 4월 21일, 무디가 보스턴에 있는 교회에 나간 지 1년이 지난 때였다.
그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에드워드 킴볼이 그를 찾아왔다.
무디의 영혼을 걱정하던 그는, 몇 번이나 미루다가 그날 마음을 정하고 찾아온 것이었다. “무디,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체험이 있는가?”
”글쎄요. …저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지금도 교회에 다니며,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은 ‘자네가 개인적으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적이 있는가?’하는 것이네. 나는 자네의 영혼을 두고 기도를 많이 했네. 오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킴볼 선생과의 대화를 통해 무디는 죄악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께서 무디를 쓰신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사랑은 불같은 정열로써 나타나게 된다. 그는 처음에 아이들을 모으는 일에 마음을 써서, 16명에 불과하던 주일학교가 몇 년 만에 1,000여 명이 모일만큼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무디는,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교파를 초월하여 어떤 교리에도 매이지 않았고,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 죄를 모두 사하셨다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치중했다.
그러나 그의 신앙관은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사서 그가 가는 곳마다 비방하는 무리들이 뒤따랐지만, 그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의 말씀에 큰 감명을 받고 복음 편에 섰다.

무어하우스와의 만남

1867년, 영국을 다녀온 후 무디는 청소년 설교자 헨리 무어하우스를 만나게 된다.
헨리 무어하우스는 무디의 교회에서 7일 동안 요한복음 3장 16절 한 구절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설교를 한다. 무디는 이 청소년 설교자의 설교를 통해 두 가지의 깊이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먼저는 말씀의 무한한 깊이를 알게 되어 그 후 성경을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하고 모든 설교의 중심을 성경에 두게 되었다. 학교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과정 5년뿐인 그였지만 그는 부지런했고 매일 새벽 4시면 성경을 공부하는 성경학자가 되었다. “만일 능력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능력을 주시며 행사케 하시는 주체로서의 하나님 말씀을 등한히 하고서는 결코 그 능력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가 설교할 때는 그 시간이 오전이건 오후건 할 것 없이 청중이 몰리게 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이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성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헨리 무어하우스로부터 무디는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배우게 된다. 그 동안 무디는 하나님께선 죄인을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리라는 설교를 통해 무서운 지옥 대신에 천국을 가야한다고 설교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어하우스는 사랑의 하나님을 말해줌으로써 죄인을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공포에 쫓기어 천당을 가는 노예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리어 돌아오는 아들들을 원하셨던 것이다. 무디는 비로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3년 간의 영국 전도여행

1873년 무디는 영국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복음전도의 문은 궁핍과 고난을 함께 수반하는 어려운 것이었다.
무디 개인의 자비(自費)로 시작된 전도여행은 처음부터 방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무디는 하나님께 자신을 바쳤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시도록 맡겼기에 3년간의 영국 전도여행은 영국이라는 섬 전체를 진동시키게 되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한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불신자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수천의 타락했던 그리스도인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으며 영국 전체를 교파적인 불일치에서 떠나 복음주의 정신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믿음의 사람 무디 그리고 부흥

무디는 그의 생애를 통해 2억이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는 세상에서 뛰어난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그는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디를 계속해서 쓰실 수 있던 이유는 그가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디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디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고, 컬컬한 목소리와 많은 문법적 오류 등 설교에도 결함이 많았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헌신하기로 작정한 후부터 그는 사람의 영혼에 강하게 역사하는 설교를 할 수 있었다.

무디는 단순히 그의 이름을 D.L.무디라고 서명하고 목사 안수받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단지 평범하게 무디씨 혹은 부흥사로 불러주기를 원했다. 무디는 “나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라는 것을 믿었다. 그는 실제적으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론상의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의 신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말이다.

그는 1899년 12월 22일 세상에서의 생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그는 세상에 없으나 하나님 앞에서 또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무디 부흥의 영향은 참으로 놀라웠다. 무디는 무디성경학교와 마운트헐몬학교를 통해 수많은 그리스도의 일꾼을 양성하고 존 모트와 로버트 윌더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의 가슴에 해외 선교의 불을 지폈다.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역시 무디 부흥의 산물이었다. 수많은 젊은이가 무디의 설교를 듣고 해외 선교를 자원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에 완전히 헌신한 사람을 통해 하실 수 있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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