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주님의 마음이 품어지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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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민의 아웃리치 (헤브론선교대학교 1학년)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

2018년 7월 6일. 전도지를 엄청 싸들고 무전(無錢) 전도아웃리치를 떠났다. 가는 곳마다 전도가 목적이었다. 전도란 무엇일까? 주님의 마음이 품어지는 자리라고 말하고 싶다. 주님의 마음이 품어진다는 것은 긍휼의 마음이 막 부어진다거나 말을 갑자기 잘 하게 되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주님이 하셔야만 한다는 것이 더욱 결론되는 자리였다. 전도를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처음에는 전도하는 영상을 보고 “안녕하세요? 구원 받으셨습니까?”로 말을 시작하여 열심히 전도지를 주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한 영혼 한 영혼과 교제하게 되었다. 때를 따라 주님이 허락하시는 주님의 방법으로 전도하게 하셨다. 전도를 하면 할수록 정말 주님이 나를 은혜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끼워주셨고 이 일은 전적으로 주님이 하셔야만 하는 일임을 알게 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말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믿음에 관한 문제였다.

주님은 전도할 때에 주어진 상황을 주목하지 않고 승리의 끝을 바라보며 말하게 하셨다. 한 번은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하여 엄청 따지는 아저씨를 만나게 하셨다. 정말 많은 시간 대화를 했다. 진화론부터 시작해서 왜 하나님은 사람의 범죄와 무고한 죽음을 막지 않으시는가 뭐 이런 질문들이었다. 나름 배워왔고 나 또한 궁금했던 터라 찾아보고 질문해서 들었던 것을 통해 들은 바를 말해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말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믿음에 관한 문제였다. 정말 어쩌면 나의 열심을 갖고 열띤 대화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 자리에서 열매 비슷한 것도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쉼 없이 질문을 내뱉는 아저씨 앞에서 대답만 해주다 끝났다. 존재의 목마름을 건드릴 수 있는 질문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주님이 만나게 하신 이유는 분명히 있다. 주님이 품으신 마음과 그 결과의 끝을 바라본다. 계속 그 아저씨가 의문을 품고 그 의문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길 기도한다.

오랜 시간 대화를 하고 힘이 빠진 상태에서 뒤에 어떤 아저씨가 묵묵히 듣고 계셔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아저씨 옆에 앉았다. 그냥 앉았다. 사람의 말로 복음의 능력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의 애씀으로 나아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겸손한 태도로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듣고 인정하고 나보다 낫게 여겼다. 초점이 지식, 자랑으로 나아가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냥 들어주었다. 이렇게 전도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내 안에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전도를 하면 할수록 주님이 하셔야만 한다는 것 그것만이 결론이었다.

한편, 무전(無錢) 전도아웃리치다보니 일상생활에서 감사해야할 것을 다 알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때가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먹었던 밥, 당연하듯이 잤던 잠자리, 모기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였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밥 먹는 것, 잠자는 것, 씻는 것 등 내가 평소에 누리는 모든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감사에 대하여도 나는 무지한 존재였다. 주님이면 충분하니까 다른 것이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반대로 주님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이 분명할수록 구체적으로 주님께서 어떠한 것을 허락하셨는지 다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셨다.

아웃리치를 통해 주님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를 다루셨다. 낮아질 수 없는 마음을 주님이 십자가로 인도하셨다. 주님이 부르신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주님이 하신다는 것 그것이 결론이었다. 또, 한 몸 된 마르투스 팀을 통해서도 나를 다루시고 주님은 기도제목을 신실하게 이루셨다.

아웃리치를 통해 주님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를 다루셨다. 낮아질 수 없는 마음을 주님이 십자가로 인도하셨다. 주님이 부르신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의 원함은 항상 있었다. 나의 원함이 있었다는 것은 지체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나의 옳음을 주장하고 싶어 할 때마다 주님은 기도제목을 생각하게 하셨다. 우리 각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주목하게 하셨다. 지체를 선교사님처럼만 대해도 나의 옳음을 주장하여 연합하지 못하게 하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성령님을 대하듯이 한다면 더욱 어떠해야 하겠는가? 성령님을 사람인 선교사님 보다 못하게 여기는 나를 보며 더욱 십자가로 나아가는 은혜를 누리게 하셨다.

죄인은 다른 것이 아니라 높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죄인임을 이번 아웃리치를 통해 비춰주셨다. 높아질 수 없는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은 나의 높은 마음을 십자가에 올려놓는 주님의 다루심이 있었다. 주님께서 이번 아웃리치를 통해 복음을 듣는 한 영혼 한 영혼에게 주님만 남는 삶으로 초대하심을 찬양한다. 복음으로 초대하신 주님께서 복음을 누리는 것까지 이루심을 신뢰한다. 주님 안에서 완전한 마르투스팀! 주님이 하셨다. 마지막으로, 만나게 하신 한 영혼 한 영혼을 주님께 올려드리며 행하실 주님만 기대한다.

글쓴이 정성민 형제는 │ 부천산돌교회를 출석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2018년 3월 헤브론선교대학교에 입학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행복한 걸음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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