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음을 견고하게

460

김아용 자매 (36기 순회선교사훈련학교)

 

순회선교사 훈련학교에서 강의(lecture) 기간이 끝나가는 7월 한 달을 통해 나에게 행하신 주님의 일은 다시 한번 부르신 주님의 마음 앞에 서게 하신 것이었다.

”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느니라 (요일 4:18) “

순회선교사 훈련생이며 어린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로 참석하게 된 야엘 말씀기도 수련회를 통해서 이 말씀으로 은혜를 주셨다. 또 훈련 중간면담 과정 중에 큰 아들인 마라나타가 다친 일을 통해서도 마음에 불도장처럼 새겨주신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나를 순회선교사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의 과업을 위해 일하는 자로 부른 것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신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하길 바라셨기 때문이었다.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실수하고 연약함밖에 없던 순간에도 나에게 내밀어주신 것은 비난과 정죄가 아니라 십자가 사랑이었다.

지난 5개월의 시간을 돌아보면,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실수하고 연약함밖에 없던 순간에도 나에게 내밀어주신 것은 비난과 정죄가 아니라 십자가 사랑이었다.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가난하고 목마른 심령이 되도록 나를 붙들어주신 전적인 주님의 은혜 밖에 남는 것이 없었다. “왜 그것밖에 안되냐? 내가 너를 어떠한 핏값으로 구원했는데?” 이렇게 대하지 않으셨다. 요구나 책임을 묻지 아니하시고 지금껏 그렇게 하셨듯이 나를 존재자체로 사랑하셨다는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과 진리로 구속해주셨다.

“내가 이 부르심을 끝까지 잘 갈 수 있을까?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없이 세속적인 가치로 인한 내면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 “나 같은 자가 이 부르심에 합당한가?” 가사 일만 하는 것 같이 여겨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내가 선교사 맞나?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 수없는 마음의 공격 앞에 나에게 집중되어있는 시선을 돌이켜 이 모든 것을 알고 부르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다. 그분을 바라볼 때 비로소 보여지는 하나님 아버지의 본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나의 연약함도 어두움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큼 넉넉히 이기는 사랑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 나의 연약함이 드러날수록 더욱 짙어지는 나의 존재의 고백이 있었다. “주님 없이 살수 없어요. 주님이 필요해요.” 실상은 이 고백 이전에 ‘너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주님의 진리가 나를 붙들고 계심을 보게 하셨다.

야엘 말씀기도수련회를 통해 보여주신 것도 그랬다. 모든 순간 매분, 매초마다 주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은혜 입은 죄인, 사랑 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임을 그곳에 모인 모든 야엘 선교사들을 통해 보게 하셨고 위로받게 하셨다. 멋진 믿음의 영웅이 아니라 부르신 그 자리에서 어느새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엄마, 남편의 아내, 세상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아줌마 같아 보일지라도 주님이 보시기에는 아니었다. 사사기 4장의 야엘과 같이 천명(天命)을 받은 부르심 앞에 선 자였다.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이 주신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믿음으로 적의 장수인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았던 야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전쟁하는 군사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정체성을 보게 하셨다. 주님이 주신 완전한 무기인 복음과 기도로 가정에서, 공동체 안에서, 교회 안에서 다음세대를 믿음으로 세우고 지체를 위해 기도로 섬기며 열방에 생명의 젖줄이 되어 살리는 열방의 어미로 부르신 이 자리가 결코 작다 말할 수 없는 주님의 완전한 부르심이었다.

멋진 믿음의 영웅이 아니라 부르신 그 자리에서 어느새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엄마, 남편의 아내, 세상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아줌마 같아 보일지라도 주님이 보시기에는 아니었다.

야엘 말씀기도수련회의 본문인 베드로전·후서를 통해 사랑하는 자들에게 부탁하신 그날의 영광! 신랑 되신 주님만을 간절히 바라보고 기다리는 거룩한 부녀로 나를, 우리를 부르셨음을 말씀으로 인(印)쳐 주셨다. 결코 주님을 찾을 수 도, 사랑할 수 도 없는 존재적 죄인인 나를 그 아들의 핏 값으로 속량하셔서 주님을 보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이 전적인 주님의 은혜였음을 내 마음에 닻을 내려주셨다. 믿음을 가장한 나의 최선과 열심이 아닌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를 사랑하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의 그날을 주신 것이 전적인 주님의 공로와 은혜임을 고백하게 하셨다.(벧전1:8-9)

그 믿음을 생명으로 받은 자의 삶은 이 땅에서 안락하고 안주하는 삶이 아니요 바로 고난 받는 축복, 즉 세상이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고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드러나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의 부르심임을 알게 하셨다.(벧전2:21)

그 모든 것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근거는 거창한 비전도, 잘 갖춰진 단체의 조직이나 사역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 되게 하신 우주적인 몸 된 교회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새 계명이자 큰 계명 앞에 전부를 걸고 나아가야 함을 보게 하셨다.(벧전4:7)

나는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인 것도 사실이나 이것보다 더 실제인 것은 그런 존재는 이미 죽었고 이제는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났다는 진리가 결론되게 하셨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명하신 조건 없는 연합과 섬김으로의 부르심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하며 오직 복음과 기도가 그 열쇠임을 말씀과 증인들을 통하여 확증해주셨다.

감사와 은혜밖에 없다. 더 이상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을 수 없다. 사랑하는 자에게 베풀어주시는 이 영광스러운 부르심 앞에 망설이며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오직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주님만을 의지하며 사랑하는 것 밖에는 없음을 보게 하신다. 그리고 사역 실습을 하는 인턴쉽 과정을 앞둔 시간 앞에 다시 한 번 부르신 주님 앞에 합당한 태도로 겸손하고 상한심령으로 나아갈 것을 결단하게 하셨다. 모든 동기가 오직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전심으로 나아가도록 마음 안에 소원하게 하셨던 첫 마음을 견고히 붙들게 하신다. 주님,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이 길이 가장 완전하고 안전하며 행복한 길임을 삶으로 노래합니다. 마라나타!!

글쓴이 김아용 자매는 │ 2018년 3월 36기 순회선교사훈련학교에 남편과 5살, 4살 된 두 아들과 함께 입소한 후하나님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한 행복한 선교사로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있다.

댓글 달기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